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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상에서의 느낌

유년시절을 그리며

눈빛포스 2009. 7. 21. 12:41

 

 

 

 

  무척 반가웠다.

  어쩜 어릴적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까마중이다.

  난 이름도 몰랐다.

  이 사진을 접하면서

  마치 보고픈 옛친구를 만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이 까만 열매가 낯설지

  않을것이다.집주변 밭이나 들에서 자라는 이식물은

  까만 열매가 삭발한 스님을 닮아서 까만중이라고

  했다는데 까만 열매를 먹으면 달콤함이 이루 말할수

  없었까만것은 달았는데 까맣지 않은것을 입에

  넣고 씹어보면 입이 아리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유년시절로 돌아가보자.

 

   먹을것이 귀했는지 학교 공부를 마치고 책보를 어깨에다 두르고 집으로 내달린다.검은 고무신은 땀이차서 잘도

   벗겨져서 신발을 벗어 두손에 들고 내달렸으며   편또(도시락) 에서 반찬통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덜거럭

   거리는 소리에 발을 마추어 집으로 들어가면 제일먼저 찾는곳은 부엌이었고 가마솥 뚜껑을 열면 운좋게

   감자나 옥수수가 들어  있으면 아그작 거리며 양볼이 뽈록해지도록 먹었고 아니면 꽁보리밥에 고추장을 넣고

   비벼서 입을 실룩거리며 먹고  박아지에 찬물을 퍼서 한모금 들이키면  얼마나 속이 후련했던지.......

 

   연기가 모락모락나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당원이나 사카린으로 뒤범벅이된 개떡을 덤으로 먹어야했고

   늘 보리가 섞인밥을 먹다가 추석이나 설날에 먹는 흰쌀밥은 어찌그리 맛이 있었던지 .......

   아이스 께끼를 사먹을려고 집에 있던 유리병을 몰래 훔쳐서 바꾸어 먹고 증조할아버지한테

   혼쭐나며 닥똥같은 눈물을 흘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찔끔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칠월 폭염에 콩밭 매는 어머니를  위해 
   당원을 숟가락으로 으깨어 물에 타고  콩밭으로 가곤 했다.
   차가운 물이 담긴 주전자는 더위에 땀을 내듯이 물방울이 배어나고
   어머니는 그늘도 없는 밭고랑에 앉아 그 당원물을 달게도 잡수셨다

 

   어린시절 뒷동산 무덤가에서 삘기를 뽑아 먹은 기억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껌 대신 씹던 삘기, 사탕보다 새콤달콤했던 산딸기, 눈깔사탕 그리워 꿀풀을 꺾어 쪽쪽 빨아먹었고

   그 아름답던 봄날의 등하교때 냇가에 피는 버들나무를 꺽어 피리(호띠기)를 만들어불고 다녔다.


   찔레나무가 새 순을 쭉쭉 뻗어 올리면 그 탐스럽고 보드라운 순을 꺾을려고 까시를 피해 손을 넣으면

   영락없이 손이 찔렸고 어렵사리 꺽어서 껍질을 벗기고 아그작거리며 먹던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뽀리똥(보리수)과 앵두를 입에 넣고 오물작거리면 입이 그리시원할수가 없었고

   5월이 되면 동구 밖의 아카시아 나무에서 풍겨나오는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찔렀

   꽃송이 하나 전체를 손이나 입으로 쭉 훑어서 입 한 가득 넣고 씹어야 제 맛이 났다.

 

    가을이 오면 그야 말로 먹을것이 풍성 해지는데,머루,다래,깨금도 있고...

    보리가 누렇게 익어갈 무렵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뽕밭에 들어 앉아 오들개 따 먹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누에치기(양잠)를 하는 집들이 대부분이라 뽕밭이야 흔했다.

    뽕나무 한 그루에 달리는 오디만해도 한 녀석이 다 먹을 수 없을만큼 달렸다.

    물론 한번에 익는 것이 아니어서 한 그루에 모두 들러 붙어 앉아 있을 이유는 없다.

 

    벌나비가 꽃을 찾듯이 그루 저 그루 아이들은 저마다 흩어져서 열심히 오디를 따먹었다.

    붉은 열매는 시어서 반드시 붉은 빛이 완전히 가신 까만 열매만 따먹었다.

    새콤달콤한 열매의 맛과 향기는 산딸기가 부럽지 않았다.

    그리고 옥수수가 익어가면서 그 옥수숫대에 단맛이 배어들고 다발로 묶어 다니면서 

     입술이 베어지기도 하면서 껍질을 벗겨내고 단물을 빨아대곤 하였다.

 

     겨울이오면 자치기,스케이트타기 ,딱지치기를  팔이 빠질정도로 해댔으며

      다마(구슬)치기,비석치기로 해넘어가는줄 몰랐으니 그 시절이 언제 이던가?

      늘 고무신을 신던 나에게 아버지는 장에다녀오시더니 털신을 던져주시는 거였다.

      얼마나 좋았던지 ..그리고 막내이모가 사주었던 운동화가 너무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꿈길을 걷는것 같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전기가 들어오질않아 등잔불을 키고 살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면

    코속이 시커먼해져서 서로 형제들끼리 키키덕 거리며 웃던 시절이 그립다.

 

    그러던 어느날 전기가 들어왔고 곧이어 흑백티비가 등장했고 밤만되면 동네 티비가 있다

    집을 어지간히 드나들며 전우라는 연속극에 매료되어 시간가는줄 모르게 밤을 지냈으며....

    흑백에서 칼라티비가 등장했는데 로버트 태권브이를 칼라로 보던 그 아찔함을 잊을수가 없다.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늙은이는 추억에 산다는 옛말이 있듯이 이제 50을 눈앞에 둔지금....

   옛향수가 그리워 지는것을 보면 정말 나이가 먹어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