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집 큰아이가 초등학교 일학년 때니까 삼십 년쯤 전 얘기가 되겠네요.
학교에서 가을 운동회를 한다기에 구경을 갔습니다.
마침 일학 년 아이들이 달리기를 하더군요.
그냥 달리는 게 아니라, 누가 빨리 달리는지를 겨루더란 말입니다.
“달리기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는 곧장 “달리기를 겨룬다[競走].”로 알아듣지요.
운동회에서 그냥 달리기만 하는 건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그만큼 우리 머리는 ‘겨루기’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아무튼, 일학년 꼬맹이들이 다섯인가 여섯인가 한 팀을 이루어 달리는데.
한 사내아이가 뛰어난 솜씨로 앞서 나가며 힐끔 힐끔 뒤돌아보는 모습이 참 귀엽더군요.
그렇게 중간쯤 달렸을까요?
혼자서 일등으로 달리는 아이 뒤를 나머지 고만고만한 것들이 무더기를 이루어 따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한 계집아이가 운동장 바닥이 울리도록 오지게 넘어지는 것이었어요.
모두들 깜짝 놀랐고, 선생님 한 분이 현장으로 달려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일등으로 앞서 가던 사내아이가 주춤거리며 걸음을 멈추더니 글쎄
그 넘어져 있는 아이한테로 뒤돌아 달려가지 뭡니까?
가서는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뭐라고 말하면서 그 손을 잡고,
제 동무가 절름거리니까 저도 절름거리며,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거예요.
저에게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지금 그 광경을 회상만 하는데도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당연히 그 아이는 제 동무와 함께 꼴찌를 했지요.
나중에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교장이라면 저 녀석에게 최고 일등상을 줄 텐데,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아마도 틀림없이, 그날 녀석은 어른들에게 꾸중까지는 아니더라도 따끔한 충고를 들었을 거예요.
그러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제 밥도 찾아먹지 못해서야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 작정이냐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그 장면이 제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이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에게만은, 그날 두 아이가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해준 천사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봐라, 아름답지 않냐? 저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 수 있다. 저렇게 살아야 그게 사람이다.”
주님의 도우심과 이끄심으로 저는 아직 누구와 무엇을 놓고 다투거나 겨룬 적이 없습니다.
모르지요, 저도 모 르게 그런 적이 있었는지, 그건 모를 일입니다만,
무슨 장(長) 자리를 놓고 겨루거나 무슨 상을 타기 위해 상대와 겨루어본 기억이 없어요.
천행(天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 통령 김 영삼 씨가 ‘우르과이 라운드’를 당면하여 “바야흐로 세계는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었다.”
고 선언했을 때 저는머리가 어지럽고 구역질이 나더군요.
그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적절히 표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쟁도 그냥 경쟁이 아니라 무한 경쟁이라니!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그 무렵 어느 재벌 총수가 TV에 나와서 일등 아니면 죽는다고,
일등만이 살아남는다고 열변을 토할 때 저는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당신 말대로 일등만 살아남는 그런 세상이라면,
나는 이 지구에서 뛰어내리겠다! 그런 세상이라면 더 머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저는 지구에서 뛰어내리지도 않았고 여태껏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등만 살아 남는 세상을 제가 용납했기 아니라, 본디 그런 세상은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겨루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아니, 서로 겨루지 않는 가운데,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붙잡아주는
거기에 진정한 평화와 기쁨과 인생의 보람이 있는 것이라고,
그것을 네 몸으로 실험해보고 네 삶으로 증명해보이라고,
삼십 년쯤 전 어느 청명한 날,
두 꼬마 천사를 시켜 주님은 저에게 하늘 계시를 내려주셨던 것입니다.
관옥-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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