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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빈씨의 영혼 결혼식을 보면서 본문

일상/일상에서의 느낌

정다빈씨의 영혼 결혼식을 보면서

눈빛포스 2011. 5. 22. 17:52

 

2007년 우울증등의 이유로 27세꽃다운 나이로 목숨을 끊은 고 정다빈씨의 사후 4년 만에 영혼 결혼식 기사를 보았다

정다빈 씨의 모친이" 미혼으로 세상을 떠난 딸을 위로하기 위해 영혼 결혼식을 준비했다"며 부모의 소견을 피력했는데

 이 이야기를 보면서 작은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6.25동란이 일어나기 바로전 증조부의 자(박재성)께서 여수 순천 반란 사건때 미혼으로 전사하자 정다빈씨의 모친의

심정으로 영혼결혼식을 치루는 기록이 있길래 다시 꺼집어내어 읽어본다.이것이 부모의 마음인듯 싶다.
.

 

 

 

          을유년 해방이후 남북으로 갈리어 기축년에 여수난이 일어난것이다.

          자식 재성의 혼인을 정하고 결혼의논을 하고자 대전 군대청으로 편지를 두어번이나

          부치었으나 회답이 없다.

          대전 군대청을 가서 면회신청을 하였더니 한 군인이 나와서 말하되 "북적이 여수에 침범

          하였다 하여 자제분이 소대장으로 군인을 거느리고 나갔사옵니다."

          할말이 없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몇일이 지난후에 군인 한사람이 우리집을 찾아왔다.

          집으로 들어오더니 말도  아니한다.

          "여보 군인..

           무슨말이라도 속시원히 무슨 말이라도 얼른 하여 나의 마음을 속시원하게 해주오"

 

           "한말씀 드립니다. 재성소대장은 대전서 여수로 간날부터 적과 싸워 성공하고

            제3차 전쟁에 나가서 싸우다가 적탄을 맞고 본진으로 돌아왓습니다.

            그날밤 신음을 하다가 그 이튼날 유언을 하는데-"우리 부모는 형님이 있으니 봉양을

            잘할것이요.나는 우리나라를 위하여 죽으니 사뭇여한이 없다"고 하면서 운명하였습니다."

            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하도 기가차서 마음을 어찌할수 없는것이다.

           -여보 군인 울지마시오!

            군인이 전사하는것은 당연지사라 하였으니 자세한 말이나 해주시오"

           -"예, 일주일후에 대전에서 위령제를 거행하오니 꼭 참석하시옵소서"

            하고 즉시 떠났다.

 

          우리가족들은 슬퍼 하였다.

 

 

 

              

 

         증조부 석정공께서  당신께서 보내신 생을

         기록해 놓은 <평생수첩>이라는 책이 있다.

 

          틈날때마다 읽어 보는데.....

          참으로 감개 무량하다.

 

          증조부의 삶의 기록을 더듬어 보면서

           내자신을 채찍질해본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자식 재성이에 대한 부분이었다.

          내게는 작은 할아버지 되시는 분이시다.

 

          군인이셨고 여수 순천반란사건때

          전사하셨는데  자식의 영혼결혼식을

          시키는 부분이 나온다.

          말로만 듣던 영혼결혼식이다

   

 

            『  나의 마음은 슬픔중에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식의 결혼준비를 양가에서 하고 있던중

              전사를 하였으니 어찌하면 좋을까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명리의 김도경의 자식이

              3개월전에 죽었다하니 다같이 사망한 사람과 같이 결혼식을 하고 양자라도 들여야 하겠다

              생각하고 즉시 대명리 김도경을 만나 말하기를.....

              "나는 자식이 전사하고 너는 여식이 사망하였으니 피차의 결혼식을 허락하여 주면 어떠냐"

              고 물으니"양가의 좋은일이니 내가 어찌 허락을 아니 하겟습니까."라며 즉시 허락한다.

 

              나는 반가워서 집으로 돌아와 결혼 준비를 했다.

              결혼일이 당하여 상여 한채와 사람 이십여명을 공동묘지에 보내어 여자의 시체를 정결하게

             개렴하여 상여 위에 실고 오라고 부탁을 하고 집에서는 자식의 유골을 상여위에다 둥그랗게

              실고 문앞 노면 결혼식장으로 가고 북편에서는 여자의 시체를 실코 온다.

 

              군인도 십여명이나 와있고  지방장관과 유지들도 모여 있엇고 면민들도 많이 무수히 오고

              산봉오리에도 여자가 모여 있다.

              그 가운데에서 결혼식을 행하였고 상여 두쌍으로 대촌리까지 걸어가서 선산에 안장을 하니

              해는 이미 서산에 걸려 있다. 군인들도 돌아가고 지방유지들도 면민들도 돌아갔다.

    

              그뒤 신문에도 결혼식 사실이 기재되고 은진 관촉사 옆에다 현충사를 지어 사자의 위패를

              걸어놓고 해마다 육월 육일에 제사를 지내주며 연2회 연금도 만여원을 주며 지방의 도로 부역도

              아니하게 되었다.

 

              마음을 가다듬을 길이 없으나 그간 보던 리장일도 보면서 면에도 다니며 세월을 보내고 있더니

              만 일년후에 경인년 육이오가 일어났다』

 

 

              전쟁터에서 죽은 자식을 영혼결혼까지 거행하게 하고 사후 양자까지 들이는 부모의 마음을

              들여다 볼수 있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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