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가 처한 상황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똑같은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각양각색으로 처신하는 것을 보면,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이런 말이 있다.“상황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그를 드러낼 뿐이다.”
옳은 말이다. 어떤 사람이 날마다 술을 마시고 고주망태로 취한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까,“세상이 내게 술을 권한다.”고 대답한다.
정직한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세상이 그에게 술을 귄했기 때문에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세상이 술을 권하니까 술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신 것이다. 세상이 술을 권하지만 나는 마시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면 마시지 않았을 것 아닌가?
서울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흐르게 됐다고 해서 며칠 동안 잔치가 건했다. 그동안 썩은 물이 흐르던 청계천에 다시 맑은 물이 흐르게 된 것도 알고 보면 사람 생각이 빚어낸 열매다. 성경에,“보이는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데서 나왔다.”는 말이 있다. 인간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그 뿌리를 찾아 보면, 나무뿌리가 대지에 묻혀 있듯이,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속에 묻혀 있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자동차 배기가스나 공장 폐수가 아니다. 그런 것들을 내보내고서라도 일단 편하게 또는 풍요롭게 살아야겠다는 마음, 안개에 시야가 가려 코앞이나 겨우 볼 수밖에 없는 사람처럼, 당장의 손익계산밖에는 내다 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의 심각한 환경문제 앞에서 오히려 희망한다. 왜냐하면 사람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청계천을 덮어서 자동차들이 더 많이 빠르게 다닐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당시로서는 꽤 신선했을 발상이 이제는 더이상 통할 수 없는 낡은 발상으로 되었다. 사람들 생각이 바뀐다는 것, 바뀔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엄청난 축복(또는 재앙)의 원천이다.
바야흐로 인류는 더이상 인간중심으로 처신했다가는 환경만 죽는 게 아니라 저 자신이 먼저 죽게 된다는 절체절명의 깨달음 앞에 이르렀다. 속된 말로, 갈 데까지 간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발상으로 살지 않으면 안되는 궁지에 몰렸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21세기에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모두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멕시코 원주민의 한 예언자는 어떻게 그런 계산을 했는지 모르겠으나,1997년(?) 어느 날 태양이 새로운 빛을 내뿜기 시작했으므로 2020년쯤에는 더이상 전쟁이 없는, 모두가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신천지가 전개된다고 했다. 요즘처럼 급속하게 변하는 추세를 보면 20년 세월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아무데서나 터지는 휴대전화 카메라, 웬만한 거리와 건물 구석마다 번뜩이는 감시 카메라, 이런 것들이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비난도 있긴 하지만, 내 눈에는 좋은 징조로 보인다. 그만큼 사람들이 켕기는 짓을 덜하지 않겠는가? 십 년 전에 가족이 저지른 비리가 발각되어 고위 공직자가 물러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누가 이 변화를 거스르거나 막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그러니까 더이상 켕기는 짓을 하지 않겠다고, 털어서 먼지 안 날 놈 여기 있다고, 가슴 내밀고 대명천지를 떳떳하게 살겠다는 ‘생각’을 품은 사람이 다가오는 21세기의 주역으로 앞장 설 것이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이현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