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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초등학교 동창회에 설렐까 ? 본문
왜 초등학교 동창회에 설렐까?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 30년 만에 소집된 얼굴들을 만나니 그 낯짝 속에 근대사의 주름이 옹기종기 박혀있다"
어느 시인이 읊은 싯귀절이다.
40·50대는 왜 초등학교 동창회에 설렐까 40~50대 사이에 순수한 그 시절로 돌아가는 동창회...
■ 과거를 만나 오늘을 위로받는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고 가슴과 허리선이 구분이 안되는 나이, 선생님과 함께 모이면 누가 스승이고 누가 제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중년들이 이토록 초등학교 동창회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중·고·대학교 동창회가 다 열리지만 초등학교 동창들처럼 푸근하고 편하지가 않다. 매번 옛날 이야기만 하는 데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얼굴은 한물간 얼굴들이지만 마음만은 초등학생이 되는 것 같다. 유일하게 잔머리 굴리지 않는 모임이라 좋다.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인맥을 새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투자 정보를 얻는 것도 아니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나 꽃미남을 만나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도 중년들은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와서 자신들이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절로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어 모인다.
지금은 교수,은행원, 교사, 사장, 떡집 주인, 포장마차 운영 등 각자 다른 명함을 내밀지만 그 명함으로 서로를 평가하지 않고 그저 ‘유난히 코를 많이 흘리던 코찔찔이’ ‘항상 늦게 오던 지각대장’ ‘도시락에 닥광을 반찬으로 싸오던 닥광 아이’ 등 초등학생 시절의 특징으로만 기억하고 그대로 인정해준다.
당장 몇시간 전에 풀어둔 시계가 어디에 있는지 까마득하기만 하지만, 30~40년 전의 일들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고 서로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퍼즐 맞추듯 전하며 타임머신을 타고 옛 시절로 돌아가는 즐거움을 이 나이에 어디에서 찾으랴.
친구 도시락 몰래 꺼내먹고 개구리를 넣어둔 일, 소풍갔을 때 순희의 고무신을 감췄던 일…. 이젠 공소시효가 지나 더 과장되게 무용담을 늘어놓고 지난 일을 고해성사한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주름이 늘어나고 다른 직업을 갖고 있어도 원형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때 새침했던 ?는 지금도 새침하고, 그때 까불던 ?는 여전히 주책스럽고…. 딱지치기나 고무줄놀이 대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칠성사이다가 아니라 소주를 마시면서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만은 소년, 소녀가 된다
■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동창인 남성,여성을 만날 수 있는곳
중년층의 초등학교 동창회의 특징은 여학생들이 더욱 적극적이라는 것. 아이들 뒷바라지나 남편의 눈치에서도 자유로워진 아주머니들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남자 동창인 남성을 만날 수 있고, 다른 모임과 달리 잘살거나 못생겼거나 차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동창생끼리는 서로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하는데 이 나이에 또래 남자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 즐거워한다.
또 다른 동창회보다 결속력이 좋은 것은 중학교 이상은 거리가 먼 곳에 사는 학생들도 모이지만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 근처에 형편이 비슷한 이들이 모여 성장환경도 비슷비슷하고 나이들어서도 큰 차이가 없어 편하단다.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동창회 카페를 만들어 서로 소식을 전하고 초등학교 시절의 사진을 다투어 올리기도 한다. 과거 컴맹이었던 중년층들이 이젠 인터넷의 주역으로 부상하면서 매일 카페에 들러 친구들의 근황을 파악하거나 글을 올리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다는 이들도 많다
■ 초등학교 동창회는 고향의 약수터 역할을 한다.
해놓은 것은 없는데 할 일은 태산 같은 나이, 거울을 보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얼굴을 발견하는 시기,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한 나이. 지치고 외로워서 쉬고 싶어도 다시 일어나기 힘들 것 같아 제대로 쉴 여유도 없는 40~50대들에게 초등학교 동창회는 고향의 약수터 역할을 한다.
갈증을 식혀주고 말없이 위로해주는…. 밍밍하지만 한없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약수터를 찾아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은 지금은 우리를 짓누르는 삶의 고뇌가 깃털처럼 가벼웠던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동창회를 찾는다. 서로의 얼굴에서 주름살을 발견하고 안쓰러워하면서도 같이 손잡고 늙어갈 친구가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면서….
벙어리 바이올린/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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