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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륙 년쯤 전, 본문

신앙/이현주 목사

십오륙 년쯤 전,

눈빛포스 2009. 3. 28. 16:12

  십오륙 년쯤 전, 강의실에서 한 신학생으로부터 "구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지요.

 

  "내가 아무리 친절하게 말해줘도 자네는 구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없을 걸세. 자네가 내게 구원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이 주스 맛이 어떠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하겠네. 내가 주스 맛을 자세하게 설명한들 자네가 내 말을 듣고서 과연 주스 맛을 알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구원이란 누구의 설명을 듣고서 알 수 있는 무엇이 아닐세. 그래서 예수는 우리에게 구원을 설명하는 대신 구원받는 길을 가르쳐주셨지. 정말 구원이 무엇인지 알고 싶나? 구원을 받아보시게. 그 수밖에 다른 길이 없네."

 

   잠시 말을 끊었다가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구원받은 사람 또한 그것을 언어에 담아 옮길 수는 없을 걸세. 억지로 말을 해도 수수께끼 같은 이상하고 애매한 말이 겨우 나오겠지. 그래서 아는 사람은 말이 없고 말하는 사람은 모른다[知者無言, 言者無知-老子]고 했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말년을 깊은 침묵으로 보낸 까닭이 아마도 여기 있지 않았을까?"

 

  요즘도 가끔 비슷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 역시 비슷하게 대답해주지요.

 

   하지만, 주스를 마셔본 사람이 그 맛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듯이 저 또한 제가 아는 구원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굳이 한 마디 한다면 이렇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천당도 지옥도 없다. 비유하자면, 꿈에서 깨어난 사람이 꿈에 지은 잘못으로 인하여 벌을 받거나 꿈에 쌓은 공덕으로 상을 받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말이 됩니까? 안 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은 뒤에 천당 갈 꿈을 꾸거나 지옥으로 갈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정말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구원이 여긴 있고 저긴 없다, 누구한테는 있고 누구한테는 없다,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렇게 구차스러운 말을 입에 올려봅니다만, 제가 이러고 있는 것은 아직 구원을 옹글게 경험하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올시다. 제가 구원을 안다는 것은 제가 주스를 먹었다는 게 아니라 주스로 되었다는 것이니까요.

 

   구원받은 자에게는 받은 바 구원도 없고, 구원받은 '나'도 없고, 그를 구원해준 '누구'도 없고, 다만 구원 자체가 있을 뿐입니다.
(관옥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