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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현주 목사

이현주 목사가 본 장기려

눈빛포스 2009. 3. 28. 16:02

이현주 목사가 본 장기려
그를 가까이에서 보고 배운 제자들을 빼고서도 장기려 선생에 대해 말하거나
글을 쓴 사람은 정말 부지기수입니다. 단순히 사람이 많다는게 아니라 이념의
좌우, 신앙의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공히 흠모 했다는 것이지요.
우선 떠오르는 사람들만 하더라도, 손봉호 교수, 한완상 교수, 도올의 형님이
되는 김용준 교수, 함석헌 선생,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이영덕 전 총리, 김상복
목사, 김명혁 목사, 이만열 교수, 이상규 교수....
심지어(?) 이현주 목사까지..ㅎㅎ 저는 평전을 준비하던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성인'이란 표현에 저항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은 별 수 없다는 철학으로 튼튼하게
무장된 손봉호 교수까지 성인이라고 부르니 쉽게 저항할 수도 없었지만...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세상에 성인이 있다면, 이런 사람을 두고 성인이라 그럴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가 과거에 성인으로 추켜 세웠던 분들이 다름 아닌
장기려 선생 같은 분이 아닐까...."
확신의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조금은 설득이 된 것 같습니다.





가난한 삶이 아름답다


                                                                                           

                                                                                                                이 현 주 목사, 동화작가, 예수살기 모임 대표







우리는 모두 독특한 존재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인간이 세상을 살다보면 할 수 없이 이러저러한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지나 온 발자취들은 결과적으로 다양한 이력을 지니게 되는데, 어느 학교를 나왔다든지, 무슨 책을 썼고, 어떤 일을 하고, 무슨 내로라하는 업적이랍시고 이야기하는 것들은 모두 다 지나간 일들이고,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독특하게 살고 있다. 나도 독특하게 산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한다. 정말 나는 독특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구상에 독특하지 않은 것이 단 하나나 있을까? 생긴 것, 생각하는 것, 살아가는 방식, 그 무엇 하나 세상에는 똑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물론 비슷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도 있고, 비슷한 문화적 여건 속에서 살다보면 비슷한 경로로 살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똑같은 삶이란, 혹은 똑같은 모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독특하다. 60억이 넘는 인간 중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현주 목사만 독특한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을 한다. 이현주 목사는 특별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고, 그저 평범한 삶이라고 착각한다. 예수의 삶, 붓다의 삶은 특별하고, 나의 삶은 범속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만큼 특별한 존재는 우주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참다운 삶을 깨닫는 길이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은 사실 말로 전달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교에서도 진정한 도(道)란 말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도(道)는 마음에서 마음으로만 전달이 되는 것이지 공덕이나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말을 안 할 수가 없으므로, 말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한번 생각해 보면 된다. 말속에 진리가 다 담겨있을 수도 없고, 말속에 내 생각을 다 표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내 말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선종(禪宗)의 창시자인 달마대사께서 남인도에서 중국에 오셨을 때는 중국의 남북조시대였다. 인도 제27대 조사(祖師)인 반야다라의 법을 이어서 인도 제28대 조사가 된 보리달마대사는 스승으로부터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중국에 전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527년경에 바다를 건너 중국 남부의 광주에 도착하였다. 그때 인도에서 대단한 고승이 왔다는 소문이 나자, 오랫동안 불교에 많은 후원을 하여 왔던 불교신자인 양 나라 국왕 무제의 초청을 받게 되었다. 양 무제는 자신이 불사를 많이 일으키고, 불교발전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였기 때문에 자부심이 강하였다. 그래서 달마대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짐은 즉위한 이래 수많은 절을 짓고 경전을 출판하였으며 교단을 후원하여 왔습니다. 이만하면 공덕이 많은 것입니까?"

그러자 달마대사는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無)"고 하였다.

"어찌 공덕이 없다고 하십니까?"하고 양 무제가 되묻자,

"그 공덕이란 인간과 천상의 속세에서나 필요한 덧없는 것이며, 그 과보 또한 조금씩 새어 나오는 옹달샘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림자가 실재(實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실체(實體)가 아니듯이, 공덕 역시 허상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양 무제가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참된 공덕이란 무엇이고 불지(佛智)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참된 공덕이란 청정한 지혜의 완성에 있습니다.  지혜는 형상을 초월한 것이며, 공적(空寂)한 것입니다."라고 달마대사가 대답했다.

양 무제가  "그렇다면 어떤 것이 달마대사께서 말하는 성스러운 진리입니까?"하고 묻자,

"진리는 크고 텅 비어서 조금도 성스러울 것이 없습니다.(達摩廓然無聖) 탁 트여 있어서 걸림이 없는 것이 불지(佛智)입니다. 한마디로 성스러운 것은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양 무제와의 대화 이후 달마대사는 형상에 집착하는 양 무제를 뒤로하고 갈대 한 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서 북위(北魏) 하남성의 숭산(崇山) 소림굴(少林窟)에서 9년간 면벽(面壁) 수행하였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달마대사께서 양 무제에게 공덕이 없다고 말한 것을 이렇게 생각한다. 양 무제는 수많은 절을 짓고, 불사를 일으키고, 불교를 숭상하였지만, 본인이 직접 기왓장 하나 올린 일이 없다. 탑에 조각한번 한 일이 없고, 말을 몰아 짐 한번 나른 일이 없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고 흔히 말을 하지만, 그것은 세종대왕이 한글창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후원한 것이지, 실지로는 수많은 학자들과 당시의 관련 기관들이 모두 동원이 되어서 한 일이다. 양 무제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의 불심과 재력과 당대의 조각가와 장인과 노동하는 사람들과 건축가들이 함께 만든 것이지 양 무제가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달마대사는 양 무제가 공덕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은 내 공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지로 공이 없다. 내 공이다 하고 말하는 인간들은 실지로 공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성스러운 것은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독특하기 때문에 특히 독특하거나 성스러운 것은 없다는 말이다. 달마대사는 성스러운 사람도, 성스러운 곳이 특별한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곳이 바로 불토(佛土)인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풀 한 포기, 혹은 사소한 하나의 생명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얼마나 독특하며,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인지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고, 등수를 매기고, 공적을 어떤 특정한 사람이 독차지하는 사회 때문에, 착각과 고정관념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누구를 닮고 싶다거나, 누구처럼 살겠다거나 하는데, 그것은 모두 불가능한 일이다. 각자는 예수처럼, 붓다처럼 살수도 없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된다. 자기는 오직 자기일 뿐이다.

그러나 한편 세상에는 절대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어떤 개인의 업적도 혼자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시절에 행주대교준공식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행주대교가 흔히 박정희가 만들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그 다리공사에서 삽질 한번 한 적이 없다. 혼자서는 절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전에 후배인 화가의 전시회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거기에 잘 그린 그림들을 보면서 내가 화가에게 질문을 하였다.

“이 나무가 있는 그림이 당신이 그린 것인가?”

그러자 그 화가는 자못 황당하다는 듯이,

“그럼 내가 그렸지, 누가 그렸겠습니까?”하고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럼 이 그림을 당신 혼자 그렸냐?” 그러자

“나 혼자 작업실에서 그렸습니다”고 한다.

과연 그 그림은 혼자서 그렸겠는가? 그 대상이 되는 나무가 없었다면 그 그림이 그려질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물감이 없었다면 그림자체가 그려질 수 있었겠는가? 또 화판이 없었거나 붓이 없었다면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는가? 그 모든 것을 만드는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그 그림은 원천적으로 그 자리에 전시되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단지 화가는 그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혼자서 다 했다고 착각을 한다. 자신의 예술적 영감이 자신이 혼자 독창적으로 갑자기 어디에서 불쑥 생겨난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은 단지 자만이고, 집착하는 에고에 불과한 것이다. 나무에게 모델료를 주지도 않으면서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린다.

우리가 숨을 쉴 때, 내가 허파가 있고, 내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있으니 숨을 쉰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나무가 숨을 쉬지 않아 주어도 과연 우리가 숨을 쉴 수 있을까?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들이쉬고 산소를 내쉬지 않아도 우리가 과연 숨을 쉴 수 있을까? 나무와 물과 공기와 바람과 땅들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은 단지 한 요소에 불과할 뿐이다.             



가난한 삶이 아름답다
가난한 삶이 아름답다는 말은 바꾸어서 이야기하면 부자로 사는 것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부(富)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실지로는 부자로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더럽고 힘든 것이다. 나는 이 가난한 삶이라는 것을 달리 해석한다. 

부자라는 것을 나는 재물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으로 가난과 부를 구분하는 방식은 매우 저급한 것이다.

나는 일전에 일본의 학술단체 초청으로 일본에 가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비자가 나오지를 않았다. 직업은 목사인데, 목회활동을 하는 교회가, 즉 소속이 없다는 것이었고, 1년 총소득이 출판사에서 주는 인지대와 각종 강연회 수입을 다 합쳐서 소득신고를 한 세금을 다 합해보니 6백만 원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비자를 받지 못해서 일본에 갈 수가 없었다. 그런 기준으로 가난과 부를 나눈다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일본에 가지 못한 불편이 재산으로서의 가치기준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일본에 가지 못해 안달한다면, 분명 1년 소득이 많고 적음에 따라 부자와 가난한 자의 기준이 갈려야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한이 없다. 골프클럽같이 고급 사교클럽에 들으려면 1년에 1억 이상은 벌어야 하고, 현대판 매관매직이라는 웬만한 지역구 국회의원 한번 하려고 하면 선거자금 10억은 있어야 한다. 남들보다 호화롭게 자녀들 교육시키려면 과외다 해외연수다해서 1년에 5천만 원도 모자란다. 욕심이 생기면 30평 아파트가 비좁고, 50평 아파트도 서넛이 살기에 양에 안 찬다. 그러나 정말로 10평 아파트가 비좁은가? 크고 작음은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것뿐이다. 내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서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부족하다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져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가난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재물 앞에 서있는 사람은 늘 가난하고 부족하고, 다른 욕심이 생긴다. 그것은 삶의 진리가 아니다. 진리의 삶이 아니다. 이러한 착각이 도처에 널려있다. 이렇게 착각하는 것, 못 보던 것, 이런 것을 제대로 보게 하고, 깨닫게 하는 것, 이것이 종교의 역할이다.       

20세기의 성인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진리를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신(神)을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쓰고 다닐 수 있는 모자가 있다면, 시장에 가서 다른 모자를 사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엇을 입을까 늘 고민하는 사람, 부족함만 떠오르는 사람, 필요함 즉 need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그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수많은 소비와 돈 쓸 일이 생기는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가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재물의 많고 적음이 부자와 가난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장기려박사는 자기 재산이 하나도 없으면서 궁핍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세운 병원을 직접 소유하지도 않았으면서도 자기 집이라고 생각했고, 세상을 모두 자기의 정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따듯하게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었고, 죽어서 자기 이름으로 재산을 두지 않았지만, 병원이라는 집과 세상을 소유한 진정한 부자로 죽었다. 재물 그 자체는 가난과 부유가 없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만이 가난과 부유가 존재한다.

지리산에서 살고 있는 한 후배에게서 엽서가 왔는데, 그 내용에, “지리산에는 오르막내리막이 없습니다. 이쪽에서 보면 오르막이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내리막입니다. 오르막내리막은 그것을 오르내리는 사람에게 존재하는 것입니다.”라고 적어왔다. 우리 삶이 바로 그런 것이다.

외국여행을 다녀 온 사람이, 특히 북구라파를 다녀온 사람은 한국사회를 보면서, “이 사회는 미래가 없는 절망적인 사회이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북구라파에 가보면 도시가 얼마나 깨끗하고, 공중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고, 강은 맑고, 쓰레기도 없으며, 자연생태가 살아 있다고 말한다. 멱살잡이 싸움이나 일삼는 한국정치를 보면 그렇게 비관적이고, 수천억 원의 뇌물을 바치는 한국정치상황을 보면 절망적이라고도 말한다. 한마디로 한국은 정치, 경제, 교육, 사회질서 등등 모두가 절망적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인가?

나는 그러나 절망과 희망은 같은 동전의 다른 면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비판은 많은 것이 좋고, 북구라파가 그렇게 깨끗해 진 것은, 그 전에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공해와 썩은 강물을 경험해 보았기에 그것을 부단히 정화시키려고 노력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유럽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행정과 교육체제가 오늘날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그 전에 수많은 불합리성과 파행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매년 1권이상은 책을 냈는데, 그 책이 잘 안 팔린다고 내가 절망했다면, 이내 책 내는 것을 그만 두었을 것이다. 절망은 단지 상대적인 것이다. 비판이 있고, 문제제기가 있으면, 우리 사회도 환경적인 사회가 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강과 산을 갖게 될 것이다. 정치와 경제도 그럴 것이다. 좋은 것을 알려면, 나쁜 것을 겪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썩은 물을 먹어본 사람만이 맑은 물의 소중함을 안다. 형편없는 사회를 겪어야만 좋은 사회를 갈구하게 된다. 몸이 아파야 평소에 건강했던 몸의 고마움을 아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었지만 고통 속의 중생과 더불어 존재하기를 원해서 보살(열반에 들지 않고 수행하는 자)로 남았다. 중생들의 고통, 번뇌가 곧 열반이기 때문이다. 번뇌가 없이, 고통이 없이, 어떻게 고통이 없는 세상을 열망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형편없는 우리 사회가 절망이냐면, 그것은 동시에 희망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삶, 그것이 바로 궁핍하고 더러운 가난한 인생이다.

그러면 지금 내가 여기서 있는 그 자리에서 부유하게 살아 갈 수 있는가?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하면 지금의 가난을 어떻게 헤어날 것이냐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이것을 넉넉히 알고 가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한 1억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1억이 생기고 나면 한 4-5일은 정말로 좋을 것이다. 만족할 만 할 것이다. 그러다가 1달이 가고 3달이 가면 또 한 2-3억이 더 있었으면 할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의 생각은 끝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평생 허덕이며 살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며칠 전 잠에서 문득 깨었을 때,

이제부터는 “그”라고 하지 말고 “너”라고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라는 존재는 내가 있는 곳에는 없다.

“너”라는 존재는 “나”가 있는 곳에는 늘 존재하는 것이다.

즉 “나”하고 직접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이곳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 “너”하고 관계있는 것하고만 살아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 갖고 살아라.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그”것을 가지고 살지 말고, 지금 나에게 없는 것을 갖고 살지 말자, 그렇게 생각했다.

안 되는 것을 하려고 하면 힘만 든다. 자연스럽게, 되어 가는 일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순리가 필요하다. 겨울에 억지로 꽃을 피우려면 공연한 헛수고가 많고, 봄이면 녹는 얼음물을 한 겨울에 녹이려면 고생만 많은 법이다. 물은 흐를 때가 되면 흘러간다. 꽃은 필 때가 되면 피어난다. 얼어붙은 폭포도 때가 되면 녹고 가차 없이 떨어져 흘러내린다. “그”하고 살려면 바로 이렇듯, 안되고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안되는 일을 하려니 힘겨운 것처럼, 자기가 갖고 있지도 않은 “그”돈을 쫒으며 살려니 힘이 든다. 자기 주머니에 있는 돈을 소중히 알고 사는 것이 진짜 부자가 아닐까?

나의 아버지는 해방직후에 면사무소의 말단직원이셨다. 적은 봉급으로는 생활이 무척 어려웠는데, 그 때 아버지 말씀이 “벌은 것 이내에서만 쓰고 살자”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이 말씀은 “대학‘이라는 책에서 나온 말로 나라살림이 남아돌고 풍부하게 하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항목에서, 첫째, 생산자가 많고 소비자가 적을 때, 두 번째는 생산이 빠르고 소비가 느릴 때, 세 번째는 들어오는 것을 보고 지출을 할 때라고 하였다.

이치란 이렇듯 단순한 것이다. 수입이 적으면 적게 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시스템은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그냥 돈을 쓰게 하니 빚을 지는 사람을 대량으로 양산했다. 교육은 쉽게 세상을 살게 하는 방법은 제쳐두고 어렵게 사는 방법만 가르쳐 준다. 잘못된 인습과 소비중독을 털어 버리고, 순리대로 이치대로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부자가 되는데, 끊임없이 당신은 가난하다고 쇠뇌를 시킨다. 그래서 소비를 부추기고, 그것을 이용해서 거대한 자본주의 소비시스템을 돌리게 되고, 그 욕심이 한도 끝도 없이 정치의 부패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안분지족(安分知足)하지 못하고 지구를 파괴하는 억지까지 부리게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천 가능한 것들만 가르쳤다. 용서와 사랑을 가르쳤는데, 미움이나 증오보다 용서와 사랑이 훨씬 쉬운 일이다. 내 뺨을 때린 이를 용서하는 것이 더 쉽지, 쫓아가서 응징하는 것은 수고가 배가된다. 그리고 그 응징은 또 다른 응징이 되어서 돌아온다. 내 뺨을 때리면, 그것을 용서하면 더 큰 용서가 되어 돌아온다. 문제는 악순환의 습관이다. 비뚤어진 삶의 방식을 여전히 고치기는 힘이 든다. 바른 삶은 어려워도 보인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걸은 사람은 없다. 1년 동안 걸음마를 배워가면서 비로소 일어서서 걷는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가르침이나, 환경을 생각하면서 절약하는 생활, 그리고 수행하는 삶이 처음에는 어렵다. 그러나 비뚤은 자세가 끝내는 자신의 신체를 망치듯이 바른 자세로 교정하는 것이 처음엔 어려워도, 그것을 제대로 고치고 나면 비로소 평생 동안 바르게 살아가는 기쁨과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 음식은 서너 가지 반찬이면 충분한데, 지나치게 많은 밥상차림으로 우리의 환경이 병들고 있다. 기독교가 불교에서 배울 중요한 점은 양념찌꺼기 하나 남기지 않는 바루공양이다. 그렇게 먹어보면 정말 기분이 좋다. 처음에 힘들어서 그렇지, 하나하나 수행하는 자세로 고쳐나가다 보면 진정한 삶이 보이고, 인생이 보이고, 지구가 보이고, 우주가 보이고, 생명이 보이고, 진리가 보이고 깨달음이 보인다. 한번에 삶의 지혜를 깨우칠 수는 없지만 부단한 수행을 통해서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말을 해서 이제는 조용히 말을 줄이려고 한다. 글도 그만 쓰고, 있는 것도 벗으려고 한다. 많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상호 나누는 것도 좋지만 또한 스스로의 수행도 중하다고 본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본성을 알고 더 맑게 만들어나가는 노력으로 진정한 가난함, 아름다운 가난함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