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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와 노래기-이현주 본문

일상/일상에서의 느낌

지렁이와 노래기-이현주

눈빛포스 2009. 5. 31. 19:12

고양이가 모르고 지렁이를 밟았어요.

깜짝 놀란 지렁이, 어떻게 했을까요?

대답은 “굼틀!”입니다.

고양이도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굼틀거리는 지렁이를 보자 재미가 났어요.

그래서 이번엔 일부러 앞발로 “툭,” 건드렸지요.

지렁이가 어떻게 했을까요?

대답은 이번에도 “굼틀!”입니다.

고양이는 재미있어서 “툭” 건드리고, 지렁이는 어김없이 “굼틀” 놀라고……


한참 그러고 있는데, 노래기가 다가왔어요.

고양이는 어쩌나 보려고 앞발로 노래기를 슬쩍 건드렸지요.

깜짝 놀란 노래기, 어떻게 했을까요?

대답은 “도르르”입니다.

도르르 몸을 말아서 작은 동그라미가 된 거예요.

그러고는 꼼짝을 않네요.

“어? 이게 죽었나?”

고양이가 동그랗게 말려있는 노래기를 다시 앞발로 건드려보았지만, 노래기는 여전히 꼼짝도 않는군요.

“에이, 죽었구나, 싱거운 녀석. 앞발로 살짝 건드렸는데 죽다니!”


고양이는 지렁이한테로 돌아섰어요.

그러고 어떻게 했을까요?

고양이 앞발로 지렁이를 툭!

지렁이 온몸으로 굼틀 또 굼틀!

한쪽은 재미가 깨소금인데 다른 쪽은 영 죽을 맛입니다.


이튿날, 지렁이와 노래기가 해바라기 그늘에서 만났어요.

노래기가 말을 걸었습니다.

“어제 보니, 고양이 녀석 널 무척 괴롭히더구나?”

“그래,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어.”

“그렇게 밟힐 때마다 굼틀거리니까 재미가 나서 자꾸만 밟는 거야. 나처럼 죽은 척하면 심심하고 맥이 빠져서 금방 다른 데로 가버리지.”

“하지만 살아있는데 어떻게 죽은 척하니?”

“바보야, 살아있으니까 죽은 척하지! 죽은 놈이 어떻게 죽은 척하니?”

“…………”

“…………”

해바라기가 빙그레 웃으며 내려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