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live one life
조영남/딜라일라 본문
초등학교 5학년때 , 아버지가 40대 후반에 뇌출혈로 쓰러져 집안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서울에서 셋방살이 하던 큰누나와 더부살이로 고등학교때부터 시작된 서울생활.
그는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것이 첫번째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고백한다.
결국 아버지가 쓰러진것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며 결국 아버지가 자기를 세상에 내보냈다고 고백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없이 예산삽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면 아마도 지금은 어느 시골 학교에서 선생을 했을거라고....
두번의 이혼은 일에 집중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것이 두번째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홀로 음악과 예술에 전념할수 있었던 자유함이었다고 ....
세번째로 전환점은 본인의 경미한 뇌졸증사건이었다고 한다. 가족력의 질병이 자기에게 닥쳐왔을때 건강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밥먹듯이 운동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유서도 작성했다는데 특이하다. “나는 원단 이기주의자였다. 추모를 받을 만한 인물이 못 되니 내 시체를 발견하는 사람은 발견 즉시 담요나 이불에 말아 화장터로 가져가 태우라. 남은 유해는 영동대교 위에서 뿌려 달라. 그리고 재산의 4분의 1은 죽을 때 내 옆에 있는 여자가 갖고, 나머지 4분의 3은 두 아들과 딸이 똑같이 4분의 1씩 나눠가져라. 다만 내 옆에 있는 여자가 바람 피웠을 경우 취소한다.”
조영남은 유서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내 인생은 한 판 놀이였다. 재미있게 잘 놀다간다.”
그의 신앙관의 이력은 특이하다 1973년5월에 그 유명한 빌리 그래함 목사가 한국을 방문해 여의도 광장에서 100만여 명의 기독교도들을 하나로 묶은 복음선교대회 당시에 복음성가를 불렀고, 그 인연으로 미국에 가서 신학 공부를 했다 1975년에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침례신학교에 입학해, 5년 뒤 학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조영남은 "신학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목사가 안 된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며 "나는 성격상 내가 설교를 하는데 문에서 예쁜 여자가 들어오면 그 여자만 쳐다볼 것 같아서 힘들다 생각했다"라는 농담도 던진다.
어느 사람은 그를 신학자라고 표현한다. 정통기독교신앙의 집안에서 자랐지만 본래 트리니티 신학대학에서 일 년에 걸쳐 과제로 작성한 논문을 밑바탕으로 쓰여진 그가 쓴 책『예수의 샅바를 잡다』을 보면 신화로 포장된 예수를 자유시켜 본래의 예수를 찾아야 한다는 자유주의 사고가 깊게 스며들어 있는 신앙관을 볼수 있다.
하여튼 기이하다. 가수이며.화가이며,작가라는 타이틀처럼 그의 인생은 한 판 놀이 인듯 싶다.
조영남도 70이라는 고지에 올라서고 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다음의 그입에서 나오는 고백이 궁금해진다. 과연 무어라 이야기 할련지....
1968년 TBC TV의 조용호 PD의 권유로 'Tom Johns'의 "Delilah"를 짧은 시간에 번안하여 불러 오늘의 조영남 씨를 있게 한 ‘딜라일라’
조영남/딜라일라(Deli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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