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live one life
[이현주 목사]모과주 사건 편지글과 아내를 떠나는 추모사 본문
『희망의 새해가 밝아 왔습니다. 희망을 품을 건덕지라고는 좀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러니까 더욱 우리는 희망을 말해야 하겠지요. 당신의 가슴에 품은 모든 꿈과 계획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 새해 출발점에서 우리는 당신에게 참으로 송구스런 마음으로 이 글을 드립니다. 무엇보다 부족하기 짝 없는 저희들을 격려해 주시고 큰 기대로서 보살펴 주신 분들을 생각할 때, 지금 이 글을 드리는 우리의 마음은 찟어질 것만 같습니다.
이현주 목사는 조촌에 온지 두 달만에 이 곳을 떠납니다. 이곳 형제들의 신임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어, 또다시 정처없이 떠날 것을 결심했습니다. 이목사가 천사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이곳 신도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리둥절할 당신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면, 선물로 받은 모과 다섯 개로 모과주를 담근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성탄절 준비를 위해 주택에 들어 온 집사님들이 모과주 담아 놓은 병과 빈 소주병을 다락에서 발견하게 됐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충격 이상이었습니다. 어떤 여집사님은 어떻게 목사님 방에 술병이 있게 되었느냐면서 가슴을 치고 울었습니다. 당신은 그 모습을 보고 우리가 받은 충격을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습니다. 너무나도 이곳 형제들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 목사는 그들 앞에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용서하고 안 하고의 문제냐는 것이었어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해조차 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의 가슴에 안겨 준 상처는 무슨 말로도 치유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물며 무슨 해명의 말이 성립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책임을지고 떠나겠다고 했지요. 그러나 떠나면 문제가 해결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12월 31일 밤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안타깝고 지루하기만 한 1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글에서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하나의 이유로 해서 하루라도 이곳에서 빨리 떠나는 게 교회를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 좋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어떤 경위로 해서인지 모르나 목사의 행동 하나하나를 마치 수상한 자의 거동을 살피듯이 살피는 눈들이 있는 이 不信의 마을에서 더 이상 버틸 용기를 우리는 잃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결국 우리는 두 달만에 참담한 패배자가 되어 어디인지도 모를 또 다른 광야로 쫓겨 갑니다. 성문 밖에서 동족의 불신을 산 모세가 찾아갔던 미디안의 광야가, 우리를 위해서도 어딘가 마련되어 있겠지요.
이번 일로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너무나도 교만했던 자신들을 뉘우치게 되었고, 우리에게는 아직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토록 사랑을 쏟아 부어 줄 수 있을 것만 같던 시골이 함부로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는 성역임을 알았고, 종교가 얼마나 인간을 화석화시키는지 새삼스럽게 알았습니다. 앞으로 저희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인간을 화석으로 만드는 종교와 투쟁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우선 급한 것은 이달(1월) 안으로 교회를 떠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 떠난 자리에 한시라도 더 머물러 있는 것은 다만 괴로움일 뿐이지요. 혹시 근처에 빈 방이나 셋집이 있는걸 아시거든 속히 연락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는 지금 무일푼입니다. 동전 한 푼 없습니다. 그러나 사글세 3∼5만원 정도라면 어떻게 꾸려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세라도 100만원 정도라면 융통해 볼 수 있습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농촌 교회로 간답시고 떠들어 대어 이곳 저곳에서 격려금과 위로의 편지를 수북이 받아 놓고 이렇게 떠나게 되니 도무지 어디에 머리를 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허탈할 뿐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나마 저희의 사정을 알려 드리는 것이 최소한의 예절이라 생각되어 이 편지를 드립니다.
용서하십시오.』 1982년 1월 2일 이현주 정용숙 올림
태양은가득히OST(만돌린) 연주 : 한결같은
목사님의 사모님은 몇년전부터 암과 투병하시다가 지난 9월5일 하늘로 가셨습니다.
사모님을 추모하기 위한 목사님의 간절한 편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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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부활에 대한 묵상 - 이현주 목사의 '아내를 떠나보내는 추모사'
정향 내 사랑하는 아내요 친구요 애인이요 누이여 어머니인 당신,
40년 전 서울 젠센기념관에서 유동식 선생님을 주례로 모시고
우리 서로 손을 잡았는데 오늘은 서로 손을 놓게 되었구료.
잡은 날이 있으니 놓는 날도 있으리라 짐작은 하였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니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소.
그러나 지금 내 가슴의 허전함을 채우고도 남을 만한 감동이 있기에
여기 많은 증인들 앞에서 내가 그 이야기를 해야겠소.
예수의 탄생은 그가 어머니의 품에 안기기 위하여
어머니 몸에서 떨어져 나온 사건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소.
그렇다면 그의 죽음은 그가 당신 어머니와 다시 하나 되려고
어머니 곁을 떠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당신의 죽음은 바로 그런 것이오.
당신이 내 중심으로 들어와 나와 다시 하나로 되기 위하여
40년 동안 잡아온 손을 놓는 날이 오늘이란 말이오.
당신이 내 중심으로 들어와 나와 하나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이제 당신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하느님 품에 안길 터인즉,
그 하느님이 다른 어디가 아닌 바로 내 중심에 계시기 때문이라오.
정향, 40년 세월 내 사랑하는 아내요 친구요 애인이요 누이요
그리고 어머니로서 같은 길을 걸어온 당신,
그동안 감정적으로 잡았던 육신의 손을 쿨하게 놓고
내 중심이자 당신의 중심이요
우주의 중심이신 어머니 하느님 품에서 하나가 됩니다.
나 또한 이 몸을 벗고 명실상부로 당신과 하나되는 그날까지
당신을 내 가슴에 품고 여태 그래왔듯이
당신과 함께 남은 길을 걸어가겠소.
아무래도 이제는 당신의 눈이 내 눈보다 밝을 터인즉,
시시콜콜 잔소리하던 버릇 제발 버리지 말고
내 삶의 구석구석을 간섭하며
내가 주님의 뜻을 잘 따를 수 있도록 코치해 주시오.
그렇게 해서 내 종신 매니저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감당해주길 바라오,
자 이제 time to say goodbye, 안녕이라 말할 때가 되었소.
어느 시인이 그랬지.
헤어지는 인사말도 되면서 만나는 인사말도 되는 안녕이란 인사말이 참 근사하다고.
그 두 가지 의미를 담아서 당신에게 말하오.
정향 안녕.
(2011년 9월 5일 이현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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