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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정(淸風亭)에 올라-무안박씨 노성파 본문
나의 고향 상월은 논산에서 공주쪽으로 13㎞ 달리면 상월면 소재지에 당도한다. 동서가 약4㎞, 남북이 약5㎞ 쯤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계룡산 국사봉에서 아침해가 솟아오르면 경운기 트랙터의 힘찬 엔진소리에 하루일이 시작되며 유서갚은 노성산 상봉에 저녁놀이 곱게 물들면 가정가정에서는 사랑의 이야기가 꽃피는 소박하고 복된 고장이다. 이 복된 고장에 무안박씨가 살게 된 것은 지금부터 4백여년전 이고장 무안박씨의 증시조되시는 박증(朴增, 1461~1517)공이 거처하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공은 1461년(세조6년)에 서울에서 출생하시었다.공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셨고 풍절이 고상하시며 기상이 고고하시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어른이셨다.그때 마침 나라에는 큰변이 일어났다.문종이 승하하고 나이어린 단종이 즉위하였다.단종임금 숙부되는 수양대군은 나이어린 단종을 폐위시키고 자기가 왕위에 오르니 이분이 바로 세조이다. 두임금을 섬길수 없다며 많은 충절의 신하들이 죽음을 택했다. 그중에 사육신이 대표적인 분들이다. 성상문은 공의 외할아버지가 되신다.
외조부 성상문선생의 충의와 절의를 후모하시어 항상 감개의 글과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진 이땅에 세상을 경계하는 시를 읊으시었다. 혼탁한 세상을 통탄하시고 초연히 출세의 뜻을 두시고 충청도의 계룡산 아래의 학당리에 잠적하시며 바람과 새소리에 친하시며 못에 낚시를 드리우고 무명의 처사로 30여년을 지냈다.
공의 동생인 정강공 호가 전라 관찰사로 부임시 찾아뵈옴으로서 비로소 성상문선생의 외손임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후 왕의 부르심도 있었지만 굳이 사양하고 낚시로 울분을 달래시며 지내시다가 1517년 (중종12년)에 57세를 일기로 별세하시니 나라에서는 공에게 형조참의 호조참판을 제수하시었다. 400여년이 흐르는 동안 공의 자손들은 번창하여 족보상으로 490여세대가 되어 자손들은 2000여명에 이르고 있다.그러나 전국적인 이농현상은 우리고장에도 예외일수는 없어서 많은 분들이 도시로 진출하여 지금현재는 150호 약 750여명의 자손들이 공의 은덕을 기리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후손들은 그곳에 공의 은덕을 기리며 고상하신 풍절과 고귀하신 인품을 오늘에 되새겨 보기 위하여 정자를 세워 청풍정이라 이름 하였다. 그곳엔 항시 청풍이 지나간다.소나무 숲에 가리워진 청풍정에 들어서면 공의 위엄스러운 말씀이 들리는것만 같다. 밖에 나와 조금 내려오면 공이 앉아서 낚시하던 바위가 있다.멀리서 보면 큰붕어 모양의 갈라진 그림이 있어 더욱 신비하게 느껴졌던 곳이다. 고기를 낚아내던 못은 세인들이 그곳을 메우고 모를 심어서 흔적을 찾을길이 없어 아쉽다. 바위에 앉아 못이 있던 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공을 뵈옵고 싶은 마음이 뭉클 솟아오른다.
공은 17대 할아버지가 되신다. 17대손인 내 피속에도 그 고상하신 풍절과 고귀하신 충절이 면면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가슴속에 벅차오르는 그 무엇을 느끼면서 되돌아 보면서 산을 내려왔다.
2016년 현재 청풍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의 판단이었는지 모르지만 청풍정이 학의 모양을 한 산을 짓누르고 있어 자손들이 잘되지 않고 있다고 하는 풍문을 퍼트리어 결국에는 선배들이 애써 잘지은 청풍정을 철거했다. 괜한 분함과 속상함이 머리끝까지 올라오니 참 어이가 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청풍정 복원사업이 추진되고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위안을 삼는다.
하루속히 청풍정이 재건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1974년에 발간된 족보에 실려있던 청풍정의 모습이다.
족보가 발간되었을때는 분명히 존재했다.
들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학당리를 지나가던 어떤 도인이 청풍정을 보면서 학의 머리부분을 청풍정이 짓누르고 있어서
자손들이 번성하지 못한다는 한마디를 내던지며 사라졌다고 한다.
이말을 들은 종인들은 바로 풍문을 퍼트리고 어느날 갑자기 청풍정을 무너트리고 흔적도 없이 없애버렸다고 한다.
청풍정은 동네주민들의 쉼터였다고 술회한다.
농사일을 하다가 힘이들면 조대암뒷편에 서있던 청풍정에 올라 쉼을 얻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들을 하신다.
어렵던 시절 종인들이 힘겹게 모아 만든 청풍정인데 왜들 그랬는지.....풍문한마디에 역사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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