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live one life
[스크랩] 여의도 벚꽃 축제 본문
캐갱 캥 캐엥...
높고도 낭랑한 봄 여인 소리!
호야네 전화 속엔, 내 여친 쉴프 목소리가 들어 있다.
ㅡ맹보야! 너 본지 꽤 오래구나! 설마 나를 잊어버리진 않았겠지? 캐갱~
똑~ 전화받던 마님이 안약 한 방울을 짜넣는다.
"맹보네! 산 밑으로 이사가더니 옛 동네는 잊었수? 전화도 뜸하고..."
마님 눈에 떨어진 약방울이 무척 인정머리없게 생겼다.
"호야네! 뭔 소리를 그리 섭섭케 하니껴? 생기는 거 없이 눈알만 빠지구만."
"에? 또 눈이 터졌다구?!... 그 놈의 눈은 못볼 걸 봤나? 걸핏하면 터지네,그려~"
"충혈된 거지, 터진 건 아이라 카드만! 내 꼼짝 못하고 집구석에 쳐박혀 있는데, 문병은 못 올망정 캥캥거리긴."
ㅡ캐갱 캥 캐엥...
호야엄마 대신 쉴프가 짖어대는 정오.
마님은 계속 눈꺼풀만 껌뻑인다.
"맹모! 이유없이 눈이 자꾸 터지는 건ㅡ 꼼쀼또를 오래 했거나, 몰래 싸돌아다닌 증거지, 안 그래요?"
"우엥?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우째 날 알아 봤니껴?"
마님이 화들짝 놀라며 전화기로 내 눈을 가린다.
"음마야~ 여의도 벚꽃이 구경거리론 최곤가 보네! 그래, 테레비에 비친 내 얼굴... 잘 나왔든교?! "
"뭬에?! 혼자 벚꽃구경을 갔다고? 이 여편네! 나랑 같이 가자 약속해놓고... "
"저어... 얼라 아부지가... 벚꽃축제 때 가면 밟혀 죽는다꼬... 꽃 필락말락 할 때... 미리 갔구만."
"그래도 그렇지! 맹보랑, 쉴프랑 사진찍어 주려고 잔뜩 별렸는데, 오늘 다 글렀잖앗!"
"꽃인지 사람인지도 모를 여의도에, 개새끼까지 가면 우야니껴?"
펄쩍 뛰는 내 뒷다리를 마님이 걷어찬다.
ㅡ깨갱, 깽 깨앵!
"어머머~ 올해도 그렇게 사람이 많아요? 우리 쉴프는 구둣발에 채여 죽겠네!"
호야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하모! 봄이라꼬 니도나도 다 꽃구경 나왔는데... 나도 겨우 살아왔니더.
벚꽃구경이 아이라 사람 뒷통수만 보고 걷다가ㅡ 길 가의 번데기 냄새캉, 술 파는 좌판대캉...아휴! 거기 걸려 식겁했니더.
골병들게 여의도 가지 말고, 우리 동네 꽃시장이나 갑시더!"
"그럴까?! 봉황 대신 꿩이라고?"
마님은 벌써 외출준비를 한다.
ㅡ그럼, 난 뭐야? 꽃구경도 못가고, 쉴프도 못 만나고, 천날만날 집 지키는 내 신세!
징징 짜도 소용이 없다.
마님은 외출해 버렸고, 현관문은 굳게 잠겨졌다.
사람들은 꽃 찾아, 친구 찾아 나가면서, 개들은 왜 집안에만 가두는지?
잔인한 계절, 그래서 4월은 더 잔인한가 보다!
베란다에 엎드려 창밖을 내다보며ㅡ 나의 여친 쉴프만 생각한다.
고상한 회색 털, 신비스런 코, 앞머리로 살짝가린 갈색 눈동자!
슬쩍 꼬리치는 애교만 아니었다면 내 이리 마음에 두지 않으련만...
아! 첫 인상이란 이렇듯 평생을 안고가는 것이련가?
마님 얘기론, 호야네도 그랬단다.
갓 상경한 시골색시처럼 수더분한 인상에 마님이 홀렸다니까ㅡ
인간은 겉과 속이 다른 양면성이라지만, 대개 겉모양을 기억하지 않는가?
"으흠~ 봄냄새!"
매화 분재를 들고온 마님이 가증스럽게 웃고 있다.
이건 분명, 마음좋은 호야네가 사줬을 것이다.
ㅡ흐음, 흠... 마님! 쉴프는 잘 있대요?
"쉴프 고 년은 개가 아니라 영물이라드라! 과자를 보고ㅡ'먹어라' 할 때까지 참는 개가 세상에 어딨노!"
인간들이란 또 개를 갖고 트집이다.
솔직한 표현, 직선적인 행동은 멀리 하면서, 빙빙 돌려 내 허를 찌르려 한다.
사람들은 벚꽃구경하면서, 밀고, 밀리고, 빵빵대고, 마셔놓고는ㅡ 전혀 딴 세상인양 말을 하면서 말이다.
이중인격!
그 고운 꽃길에, 먹고 살려고 좌판 벌인 꼬치장수, 번데기 장수, 술장수를 탓하면서ㅡ
자신들이 사 먹고, 버리고, 엎지르고, 휘청거린 거리는 '내몰라라' 하면서ㅡ왜 그 장사들만 경멸하는지?
얻어온 분재에 갓 핀 매화 두 송이!
갑자기 쉴프냄새가 그리워진다.
내 사랑 쉴프의 봄 향기를 맡으며 야금야금~ 꽃잎을 씹는다.
마님이 외출복을 갈아입는 동안, 최대한 빨리 꽃잎을 맛보고 싶다.
ㅡ마님! 이 화창한 벚꽃 날, 오늘만큼은 야단치지 마셔요!
먹을 거 보고 덤비는 게 어디 개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