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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양은그릇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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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합금기술이 뛰어났고 오동, 백동 등으로 고급식기와 장식품들을 만들었다. 이 오동, 백동 등에 비해 조선말기에 서양에서 들어온 은이라 하여 새로운 합금을 양은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양은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합금 양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해방 후부터 시중에 알미늄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알미늄그릇들은 은백색에 화려하고 가볍고 신기하여 장사꾼들이 양은이라고 과대포장하여 불렀고 국민들도 자신들이 양은그릇을 쓴다는 만족감에서 또는 그게 양은인 줄 알고 모두 양은그릇이라고 불렀다. 양은 즉 알미늄은 그 뒤 표면의 내식성을 강화한 알루마이트로 발전을 했고 60년대의 우리 부엌에 혁명을 가져왔다. 양은쟁반 등 양은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그릇들이 양은으로 바뀌었다. 양은은 편했다. 사기그릇처럼 잘 깨지지 않았고 유기(놋그릇)처럼 무겁거나 녹슬지도 않았다. 그릇가게에는 양은그릇으로 가득 찼고 장사꾼들은 리어카 가득 양은그릇을 싣고 전국을 누볐다. 질그릇, 도기, 자기, 유기, 백자기, 막사기 등이 있었다. 계절에 따라 여름에는 사기를 주로 썼고 겨울에는 놋그릇을 썼다. 놋그릇은 무겁고 시퍼렇게 녹청이 슬어 자주 닦아야 했다. 사기그릇은 잘 깨지고 설거지를 하다가 툭하면 이빨이 빠졌다. 철학적 의미가 시대상과 일치하였다. 대량생산과 싼값과 쉬 망가지는 것과 빨리 뜨거워지고 빨리 식는 것이었다. 양은그릇은 구멍(빵꾸)이 잘 났다. 순도나 피막기술의 문제도 있겠지만 짜고 신 음식의 특징과 불에 직접 바닥이 닿는 요리의 특성 때문에 구멍이 잘 났고 덕분에 <솥 때워~ 냄비 때워~> 하는 땜장이들이 메뚜기 한철이었다. 동네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뚫어진 양은그릇을 때워주었다. 실 구멍은 송곳으로 주변을 넓히고 은박지를 말아 때우고 양쪽에서 망치질을 했다. 좀 넓은 구멍은 알루미늄조각을 도가니에서 녹여 헝겊뭉치에 굴렸다가 구멍을 막아 때웠다. 아주 넓은 면적은 알미늄 조각을 구멍에 알맞게 오리고 구멍난 곳에 대고 리베트못질을 했다. 홧김에 술꾼들이 마구 다루어 쭈그러지기도 했으나 술이 덜 들어가라고 주인이 손으로 꾹꾹 누르기도 했다. 더 이상 못쓰게 된 양은그릇은 몇 개 모이면 리어카 장수가 새것 하나로 바꾸어주었다. 그래서 양은그릇 장수들은 <양은그릇사려> 하지 않고 <양은바꿔> 했다. 녹슬지 않고 쭈그러지지 않고 구멍이 나지 않는 스텐레스가 등장했다. 드디어 우리의 여성들은 놋그릇의 족쇄에서 해방이 되기 시작했다. 녹이 없다는 스텐레스가 스뎅으로 불렸다. 1980년대에는 그릇의 춘추전국시대였다. 한참 유행한 유리그릇의 고급스러움과 플라스틱그릇의 화려한 색상과 다양함이 먹고사는 것을 해결한 우리들의 또다른 목마름을 충족시켜주었다. 전자레인지가 널리 쓰이면서 파이렉스, 크리스탈 등 내열유리제품과 고급소재가 주종을 이루었고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간편한 것을 좋아하게 되어 종이, 은박 등 일회용그릇이 판을 치게 되었다. 미래는 건강을 중요시하고 복고풍이 다시 돌아 나무그릇, 칠기, 질그릇과 건강물질이 씌워진 바이오그릇이 유행할 것 같다. 빨간 김칫물과 시커먼 알미늄녹물이 화려하게 물든 도시락을 조개탄 난로 위에 구워 먹던 시절이 그립다. 이 구멍난 가슴을 때워 줄 누구 땜장이는 어디 없는가? 솥 때워~ 냄비 때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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